전통적으로 인쇄된 원고를 받아서 문법이나 문서포맷 등을 검토할 때 편집자는 ‘교정부호(markup)’을 사용하곤 했다. 예를 들어 20c 초의 신문사에서는 편집자가 특정한 기사 여백에 부호들을 기입해 넣어서 기사의 시각적 표현양식을 지시했다.

이 부호들은 조판책임자(윤전기에 들어가기 직전에 최종 원고를 활판인쇄로 짜는 사람)에게 구체적인 작업지시를 전달하는 암호였다. 이를테면 머릿기사 제목에는 속기부호로 특정한 서체를 지정하고는 했는데, 편집자가 페이지의 첫 줄에서 화살표를 뽑아 ‘TR36b/c’라고 적어놓으면, 조판 담당은 이를 머릿기사 제목에 ‘타임즈 로만체를 36포인트 크기의 볼드체로 사용하되 중앙정렬하라’는 의미로 이해라는 식이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출판물에는 기사와 페이지의 각 부분별로 표준이 지정되어 있었다. 이렇게 해두면 편집자가 똑같은 부호를 매번 되풀이해서 적어넣을 필요가 없다. 페이지의 각 요소들을 특정한 이름들로 간단하게 부를 수 있었던 것이다.

이는 시간을 절약해주었을 뿐만 아니라 출판물 전체에 걸쳐 일관성을 유지하는 방법이기도 했다. 가령 신문의 경우 기사가 페이지에 배치된 시각적 중요도에 따라 여섯 개의 서로 다른 스타일이 규정되어 있었고 이것이 기사의 제목에 적용되었다.

신문의 편집자는 ‘HEAD3’과 같은 표준부호를 기사의 첫 줄에 달아놓아서 페이지를 구성하는 시간을 줄일 수 있었다. 조판 담당은 스타일 목록표에 규정되어 있는 대로 해당부호의 세부사항을 적용하면 끝이었다. 이 과정은 궁극적으로는 모든 종류의 출판 뿐만 아니라 컴퓨터공학 같은 분야에도 적용될 수 있는 개념이었다.

초기 컴퓨터 워드프로세서 프로그램들도 비슷한 진화과정을 겪었다. 편집자가 텍스트의 배열을 위해 편집기호들을 표시하듯이 이들 프로그램은 텍스트의 시각적 구성을 지정하기 위한 특정한 마크업(markup) 부호를 사용하였다.

사용자는 텍스트 상태-볼드체인지, 이탤릭인지 혹은 크게 보여줄 것인지, 작게 보여줄 것인지 등-를 나타내는 일련의 명령들을 사용하여 텍스트를 표시할 수 있었다.

이것이 지금과 같이 간략한 역사적 맥락에서는 재미있는 일화겠지만, 1960년대 후반무렵 찰스 골드파브와 같은 연구자들에게는 획기적인 방법이었다. 그들은 워드프로세서에 활판인쇄에서 사용하는 관례를 적용하는 것을 근시안적인 일이라고 생각하였다.

오히려 그들은 전자문서의 경우 보다 일반적인 마크업 부호를 사용함으로써, 편집자와 조판공 사이의 의사소통을 위해 전통적으로 사용하던 교정부호처럼 페이지를 구성하는 요소들을 정의하기를 원했다. 다시 말해, 문서의 내용과 문서의 기본 골격을 교정하는 요소들을 분리시킴으로써 전자문서가 더 이상 하나의 고정된 디자인에 얽매이지 않도록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찰스는 자신의 소송서류들을 여러 조각으로 나눈 다음, 각 조각에 특정 디자인을 표시하는 포맷 대신 애초의 출처에 따라 이름을 주어 저장하였다. 이제 엄청난 분량의 텍스트를 ’36 포인트 타임즈 로만’하는 식으로 일일이 지정할 것이 아닐, 단지 ‘제목’이라고만 지정해도 되었다.

같은 과정이 문서의 다른 부분에도 동일하게 적용될 수 있었다. 작성자, 작성일자, 개요, 등등. 수천 건의 서류들이 일단 이와 같은 태그들로 분류된 다음에는 특정한 변호사가 작성한 소송서류의 요약문을 한데 묶는 다던가, 문서를 단순한 개요형식으로 요약한다든가 하는 놀라운 일들을 할 수 있었다.

이어서 최종적인 서류가 완성된 다음에는 편집자와 조판공들이 수십년 전에 그랬듯이 스타일 목록을 지정하는 식으로 문서를 출력할 수 있었다. 각 태그마다 특정한 형식의 스타일이 지정되었고, 문서는 구체적인 양식에 따라 작성되었다. 업데이트, 디자인 수정 등의 작업은 이제 아주 손쉬운 일이었다. 찰스는 더 이상 지루해하지 않았다. 기술과 출판이 놀랍도록 강력한 방식으로 결합한 것이다.

-출처 : 웹디자인 마인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