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타블렛 구입

와콤의 신형 타블렛인 밤부(bamboo)를 구입했다. 구입 후 바로 한 일은 만화 그리기. 매일 1컷 이상 꾸준히 그리면서 감각을 되찾아야 겠다. 이로써 집중력이 떨어질 때 할일이 또 하나 생겼다. ㅎㅎ

습작1

다시 만화를 그린다면..

대학 4년과 군대 생활 2년 동안 만화를 그려왔는데, 제대한 후로 거의 그려본 기억이 없다. 비록 돈이 안된다는 이유로 20여년 동안 유일한 꿈이었던 만화가를 접었던 나지만, 지금도 가끔 펜을 잡곤한다. 물론 잉크는 말라버린지 오래다.

하드 디스크 정리하다가 발견한 군대에서 그렸던 만화 2 페이지 :

군대에서 그린 만화 1

군대에서 그린 만화 2

하필이면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 제목이 “다시 사랑한다면”이네.. ㅎㅎ

뚜껑은 이미 열렸다. 이젠 웹 차례다.

오픈웹 운동을 지지하는 차원에서 그린 카툰입니다. 왕뚜껑의 CF를 패러디했는데, 오랫만에 그려본 카툰(cartoon)이라 그런지 쉽지 않군요. 특히 수성사인펜의 압박이… ㅠ.ㅠ

열려라 웹!

맥 사용자도 국내 사이트를 서핑하고 싶습니다. 리눅스 사용자도 국내 사이트를 서핑하고 싶습니다. 그들의 웹서핑을 방해는 사이트들과 이를 방조하는 정부에 대해서 이미 1000만 네티즌의 뚜껑이 열렸습니다.(화가 극도로 치밀었습니다.) ㅎㅎ

웹표준을 준수하지 않고 제작된 국내 사이트들에 대한 접근성을 보장하라는 1000만 네티즌의 목소리가 오픈웹 운동과 함께 정부를 지속적으로 압박할 수 있길 바랍니다. 물론 압박의 끝은 관련 법의 제정 또는 수정이겠죠.

정부의 치마 폭 아래 무엇이 감춰져 있는지 궁금하군요. 혹시 MS의 $$일지도 모릅니다. -_-;

칼이 없으면 송곳으로라도~

몇일 전 아그파의 파산 소식은 나에게 꽤 큰 충격이었다. 물론 문서작성할 땐 노트와 연필보다는 문서편집기와 키보드가 익숙한 나이만, 그림을 그릴때 만큼은 타블렛보다 연필을 들었었기 때문이다.

인쇄용 만화를 그려본 사람이라면, 잉크를 찍어서 펜촉으로 그려가는 맛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손끝에 미세한 힘조절과 손목의 회전으로 그려가는 곡선은 그 어떤 디지털 기기에서도 느낄 수 없는 매력이다. (페인터 프로그램을 다뤄보지 못해서 느끼는 점일지도 모름)

펜으로 원고지에 그림을 그렸던 적이 기억에서 가물가물할 정도지만, 지금도 나는 무심결에 연습장에 낙서를 하곤 한다. 집에 스캐너가 없기에 이런 그림이나 낙서들을 이미지파일로 만드는 것이 힘들다고 생각했는데, 오늘 아침에 문득 디지털카메라와 포토샵으로 충분히 커버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연습용

꽤 오랫동안 다른 것들에 관심을 갖다보니 취미활동에 너무 무심했던 것 같다. 디카와 포토샵을 스캐너 대신 활용하는 부분을 좀 더 강구해봐야 겠다. ㅎㅎ

열린만화 창’ 회지 발간

나의 대학 생활은 동아리 생활이 거의 50%를 차지한다. 아마 총학생회와 같은 학생운동을 하지 않았다면 70% 이상을 차지했을 것이다. 중간/기말고사 때도 도서관보다 동아리방에서 공부하는 편이었으니.. 문제가 좀 있었다. -_-;

전남대학교 유일한 만화동아리 열린만화 창’에서 회지가 발간됐다. 언제부턴가 매년 발행되는 회지에 관심을 잃고 있던 나였지만, 이번 회지는 발행 전부터 관심이 많았다. 거의 4년만에 동아리 각 기수별 회원소개란이 실리기 때문이다. 더욱이, 동기이자 고교시절부터 절친한 친구였던 간도(별명, 현재 無名만화가)가 이번에 발간된 회지에 실릴 97소개란을 환상적으로 제작한다는 소문이 이미 2달 전부터 퍼졌기 때문이다.

97 소개 페이지 일부 - 1/2

97~8년 대학 근처 오락실(그땐 겜방이 없었음)의 최대 흥행작이었던, 이게임을 할줄 모르면 친구들 사이에서 왕따를 당해야 했던, King of Fighter 97을 아시려나?? 스타크래프트가 출시되기 전에 오락실용 게임으로써 전국적인 게임대회를 개최할 만큼 많은 이들로부터 호응을 얻었던 게임이다. 동아리 종례를 마치면 남녀 구분 없이 동기들 모두가 오락실로 향할 정도였다.

이 게임의 캐릭터들을 동아리 동기들과 비교해서 추억과 향수를 떠올리게 하는 친구의 센스. 역시 전문만화가는 다르다.

당시 100전 99승 1패(약간 오버)의 극악무도 이오리(게임 캐릭터 이름)으로 불리었던 나는 동아리 모람적이(개인노트)에 다른 회원들로부터 시기와 질투의 글과 그림들을 받곤 했었다. 아래 그림은 예전에 스캔해 놓은 노트의 한 페이지이다.

목표는 100연승! 언제나 1승이 모자라다!

벌써 8년 전 기억인데, 당시 게임과 관련된 수많은 일화들이 아직도 생생하다. 다른 동아리와 술사기 타이틀 걸고 게임 대전… 게임 한판 더 하다가 집까지 걸어갔던 기억들..

요즘 특별히 게임을 즐기지 않는 나로써는 당시의 게임과 관련된 기억들을 떠올리게 해준 이번 회지와 회지를 발행하느라 고생한 후배들이 고마울 뿐이다. ^^

몇년 전에 그렸던 만평 몇 컷

나의 꿈은 만화가다. 그 꿈을 쫒기 위해 중/고등학교 땐 미술부 활동을 했으며, 대학땐 만화동아리 활동을 했다. 대학때 신문사에 만평투고하던 것들이 경력이 되어 군대생활 2년 2개월을 만화만 그렸다.

그런 의미에서 예전에 그렸던 만평 몇개를 소개하면,

한겨레 신문에 실렸던 만평

위의 만평은 2003년 가을에 있었던 이라크전 파병문제와 관련해서 그린 만평으로 한겨레 신문에 실렸었다.

전대신문에 연재할때 만평 중 하나

위의 만평은 전대(전남대)신문에서 만평을 연재할 때 그렸던 것으로 대학축제가 끝나고, 쓰레기장이 된 학교를 비판한 내용이다.

만화와 동떨어진 지금의 일상이 별로 슬프진 않다. 오히려, 좋아하는 일을 먹고 사는 일과 결부시키면 맘편치 못할 것 같다. 이렇게 가끔씩, 컴퓨터 한구석에 쳐박혀 있는 예전에 그렸던 만화들을 가끔씩 확인할 때마다 묘한 웃음만 나올 뿐이다.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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